약력


대구 출생. 광주의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전기공학을 배웠다. 서울의 사이언스북스에서 과학책을 읽었고, 파주의 글항아리에서 과학 및 인문 책을 읽는다. 친구들과 소설을 쓰는 모임(2019.03.~)을 매주 목요일 7시30분 합정에서 하고 있으며, 편집자들과 한 달에 한두번 정도 과학책을 읽는 모임(2019.09.~)을 하고 있다. 두 모임의 구성원은 모두 3명으로 유지되어왔다. 좋아하는 숫자는 3이다. 매주 화요일 문학 플랫폼 던전에 소설집 <무한한 잠>을 연재하고 있다.


각종 SNS(비밀순)


최근 읽은 책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브뤼노 라투르, 사월의책)

인용부호로 묶느냐 마느냐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하나요? 세계의 중요성이 달려 있습니다. 어떤 인용부호도, 어떤 조건법도 필요로 하지 않는 발화체는 세계로부터 구분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닙니다. 그런 발화체는 ‘자연스럽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발화체는 더 이상 담론에서 비롯되거나 특정 단계, 아마도 ‘최종’ 단계인 것처럼 보이지가 않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인류가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는 것과 “지구 온난화는 인류가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는 전혀 같지 않습니다. 말장난을 하는 게 아닙니다. 첫 번째 발화체는 ‘세계에’ 속해 있지만 두 번째 발화체는 ‘세계에 대한’ 불확실한 담론에 속해 있습니다. 과학철학 전체가 이 뉘앙스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학자들은 말합니다. 과학은 말합니다. 세계는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이 말의 모든 단계를—사실 자체, 세계 자체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궁극의 단계까지—잘 따라갈 수 있게 될까요?

지적 생산의 기술(우메사오 다다오, AK커뮤니케이션즈)

일기라고 해서 무조건 문학적일 필요는 없다. 문학적인 일기도 있고, 과학적인 일기도 있고, 실무적인 일기도 있다. 일기라는 장르를 영혼에 대한 기록이라고 정의하는 판단은 지나치게 비약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일기는 날짜순의 경험을 기록한 정보이며, 그 경험은 내적일 수도 있고, 외적일 수도 있다. 마음속에 앙금처럼 떠도는 생각, 영혼의 자취 등을 일기장에 써내려갈 필요는 없다. 일기를 쓰기에 앞서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구매한 것(최신순, 네이버페이 참고)

  1. 다이소 네트망과 케이블타이
  2. 오렌지8개와 감자4개
  3. 검정면마스크 5장
  4. 냉동밥용기 18개들이
  5. 4인용 테이블
  6. 모모스커피 프루티봉봉 원두 500g
  7. 헤어드라이기

단골집(무순)


좋아하는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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