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기


연휴가 끝났다. 오랜만에 회사에 와서 그럭저럭 일을 하기도 하고 가만히 있기도 한다.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누군가 댓글을 달거나 마음을 누르지 않더라도 조회수가 어쨌든 뜨니까 그 조회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최소한의 사람이라도 블로그를 보고 있구나 하는데, 네오시티 도메인을 빌린 웹을 블로그로 사용하다 보니 댓글을 남기지 않으면 누가 읽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댓글이 많이 달리는 건 내가 원하는 블로그의 모습은 아닌데 왜냐면 내가 원하는 건 사람들이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떠나는 공공일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같이 웹 수업을 들은 사람 중 한 사람이 정말 예쁜 웹페이지를 구축해놓은 것을 보았는데 와 정말 대단하다 싶었고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누군가의 강제적인 가이드 없이 웹을 또 공부하기는 너무 귀찮다. 트위터의 누군가가 <회사를 다니기는 싫은데 회사 밖에서 혼자 돈을 벌 자신은 없고 그래서 회사를 다닌다>고 하였다. 그러며 <그런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하였다. 나도 그냥 그런 사람 같다. 망해도 된다는 생각이 없으면 사업을 할 수 없겠지. 그런데 망할 수가 없다. 망하더라도 적어도 전셋집이라도 갖고 있으면서 망해야 한다.

회사 다니기 싫다 -> 창업하고 싶다 -> 자본금이 필요하다 -> 월세부터 아껴야 한다 -> 전셋집으로 옮겨야 한다 -> 중소기업청년전세자금지원대출을 받아야 한다 -> 회사에 다녀야 한다

이러한 루프 속에 있다고 한탄하듯이 말을 하고 다니곤 하는데 솔직히 말해 지금 당장 전세자금대출을 받아서 전셋집을 구하라면 왜 못 구하겠어. 그냥 또 변화가 귀찮을 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사 가고 싶은 동네의 부동산을 들러서 한번 물색해봐야 하나 싶다. 집 계약이 내년 2월에 끝나지만 중간에 나가라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이사도 사람들이 잘 안하려나 어쩌려나. 코로나 시대의 신생아 출생율은 어느 정도나 될까. 코로나 시대란 뭘까. 날씨가 너무 더워졌다. 냉모밀을 먹으려고 했는데 냉모밀을 파는 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렁된장찌개를 먹었다.

트위터에 일기 링크를 올리는 건 정말 소용없는 짓 같다. 나부터도 다른 사람이 트위터에 일기 링크를 올리면 안 들어간다. 애초에 구독하고 있던 블로그라면 모를까, 트위터를 통해 긴 글이 올려진 블로그 링크로 진입하는 게 너무 매력이 없다.

꿈이 요즘 너무 생생해져서... 그것과 우울증이 관련이 없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우울증이 완치되다시피 해서 자꾸 깜빡하고 약을 안 먹었더니 회사 생각만 하면 엄청나게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좋은 카페. 코바늘 뜨기. 봄날의 공원에서 원반 던지기. 분갈이하기. 식물 바라보기. 그런데 그것들을 꾸준히 하고 있으면서도 그 좋은 것들로 이루어진 질서에 내가 잘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왜 이렇게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 회사를 계속 다닐 생각을 하면 너무 답답하다. 그러면 내 계획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다른 길들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자꾸 귀찮다고만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여름에 쓸 매시백을 뜨고 있다.

가늘고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가방으로 만들려고 한다. 가방을 뜨고 있는 실은 흰색 면사인데 마침 딱 두 타래를 샀고 그 정도면 실 양은 적절한 것 같다. 가방을 뜨면서 이런 것들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도 있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바보 같다. 책을 만드는 일은 재미 있지만 <다른 회사에서는 이런 일을 하고 있더라 저런 일을 하고 있더라> 하며 견제하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어진다. 질투에 의존하지 않고도 꾸준히 앞으로 나가고 싶은데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애인과 친구들과 노는 것 재미있는데 결국 뭔가 평온하고 행복한 세계에 늘 발끝만 담그고 좋아하는 것 같아서 입안이 쓰다.

집주인이 내가 회사에 간 동안 집에 침입해서 화장실 세면대의 물 샘을 고쳐놓겠다고 했다. 지금 집 안을 활보하고 있겠지. 기분이 더럽다.

이번에 나올 책을 마케터들에게 설명해주어야 하는 미팅이 5시에 있는데 한 4시 30분부터 준비해야겠다. 그전에는 핫바도 사먹어야지.




침대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