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휴식과 이직의 갈림길에서


금요일에는 또 회사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의 일들은 너무 터무니없기 때문에 그저 조용히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맘뿐이다. 떠나면 모두 해결될 문제들. 분노 같은 것도 별로 남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회사를 무심한 식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먼저 나를 그렇게 생각하니까.

분노를 터뜨리면서 동료들과 카톡을 하다가 나를 적대시하는 같은 팀의 다른 사람이 내게 어떠한 끔찍한 짓을 했는지 동료들에게 말하고 그에 대한 화를 카톡방에다가 냈다. 그들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알려면 알 수 있는 일들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니까 우리들은 우리가 생각한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지 못하는 수밖에. 무무를 만나서 열을 내면서 햄버거를 먹었다.

최근 공고가 뜬 어떤 회사에 지원해볼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무무님도 애인도 지원해보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이 내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일이겠지. 오늘은 이력서를 완성했다. 내일 자소서를 쓰고 제출할 것이다...

나는 퇴사와 휴식과 이직의 갈림길에 서 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은 힘겨운 사무실 생활, 하지만 나의 힘겨움과 상관없이 어떤 사람의 눈에는 내가 무책임해보일 것이라는 점에 대한 괴로움, 실업급여(당연히 못 받는다), 취업성공패키지(취성패), 각종 청년수당, 아르바이트, 월세부담, 전셋집, 이사... 하지만 이 모든 머리 아픈 것들을 고려하면서도 내가 3개월을 그냥 쉬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합리적인 생각이 든다. 저축해둔 돈의 규모를 생각해봐도 그건 합리적인 생각이다. 다만 그렇게 쉬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뿐이다.

나 하나가 잠시 회사를 벗어나서 아침에 일어나서 식물을 돌보고 커피를 내려먹고 밥을 차려먹고 이렇게 점심과 저녁을 반복하는 식으로 한두달을 지낸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오히려 너무 달라지지 않아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경험이 두려운지도 모른다.

지원서를 쓰다보니 또 휴식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나는 쉬고 싶다고 말했으면서 왜 지원서를 쓰고 있는 걸까? 주변 사람들은 왜 나더러 쉬라고 해놓고 지원서는 쓰라고 한 걸까? 지원서를 쓰고 이 회사에 가고 싶다, 옮겨보고 싶다, 그러면 희망이 있을 것 같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걸 쓰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난 쉬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어쨌든 내가 걷는 길의 경로를 크게 벗어나는 길을 택하려면 잠시 멈춰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애인은 지원서를 쓰면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나면 퇴사에 대한 생각도 정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리될 수 있을까 과연?

지금 지원서를 쓰고 있는 곳에서 어떤 결과를 받을지 알 수도 없지만 만약에 혹시나 혹시나 입사하게 된다면? 나를 오라고 부른다면? 그렇다면 나는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기획한 책을 출간까지 마치고 나가기 위해 6월 내내 무척 무리할 것이다. 그리고 입사일을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고 미뤘음에도 불구하고 퇴사하자마자 입사하게 되겠지. 더 자세한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을 그만둬야 할까?

지원서에 이전 회사와 지금 회사에서 기획한 외서들이 어떤 책이었는지 공을 들여 썼다. 그 지원서를 볼 사람들은 그것들에 관심이 있을까?




침대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