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를 먹으며


주말이 끝나가서 우울하다. 와이와 같이 있으며 맛있는 것도 먹고 산책도 할 땐 행복하다. 하지만 우울한 건 일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긴 지루함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계속 몰두할 거리를 찾고 있고 내겐 일할 곳이 필요하다. 토요일 오전 식물들과 있는 건 행복했지만 일요일 저녁까지 토요일 오전의 관심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다만 다음주 초에는 새로운 식물들이 도착할 것인데 그날을 기다리게 되기는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식물만 보는 건 별로 원치 않는 것 같다. 그럼 무얼 하면서 식물을 보고 싶은지? 정말 모르겠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쏟았다. 여러 가지 직업을 떠올렸다. 미피가 그려진 접시에 참외를 깎아먹었다. 미피와 식물이 함께하는 집. 식물등을 꽂을 짧은 스탠드를 샀다. 셀렘과 은엽아카시아에게 저면관수해주었다.

직업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되는지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왜 나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너무 새삼스럽다. 언제는 외로워서 힘들었고 언제는 직업을 갖기 전이라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심지어 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변인들에게 힘들다 힘들다 이야기는 하고 이직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데 사실 그것도 아니고? 이게 뭔지 모르겠다! 내 비관적인 성격이 스스로를 심각하게 망친 것은 아닌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풍으로 고민했다.

저녁에 알라딘에 책 팔고 돌아오면서 현관에서 문을 여는데 평일에 퇴근하고 나서의 기분이랑은 너무 달랐다. 오늘 모든 사물이 외출하기 전인 30분 전과 똑같이 있을 것이 지루하게 여겨졌다. 평일에는 12시간을 바깥에서 보내다가 들어가니까 귀가의 과정과정이 짜릿하고 흥분된다.




침대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