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2020년을 바라보기


곧 있으면 9월이 된다. 9월부터 새로운 회사에 다니게 된다. 두근두근하고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코로나 때문에 회사에 못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집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내게는 더 편안한 일이려나. 그렇지만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요즘 빠져 있는 건 식물 키우기, <임이랑의 식물수다>, 스튜디오 소사의 <매일마감>, 수전 팔루디의 <다크룸>, 매주 3번 다니는 요가다. 막다른 길을 만나면 뒤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고 돌아가다보면 첫 시작의 느낌을 다시 찾고 싶어진다. 아주 어린 시절에 재미있어하던 것들을 생각해보고 그것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이 시기도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이럴 때 늘 큰 힘이 된다. 허리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척추측만증 때문에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이다. 요가를 해서 허리와 등근육을 단단하게 단련해야겠다.

사러가마트 옆 철물점에서 18000원을 주고 4구 3미터 멀티탭을 샀다. 베란다에 설치하고 4단으로 된 선반의 층마다 식물등을 하나씩 달아주었다. 이건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하는 이타적인 일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더 기쁘다. 내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은 왜 이렇게 기쁘지가 않을까. 식물을 키우는 건 그런 욕망을 순화된 방식으로 해소하는 하나의 방안이기도 하다.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대부분의 시간에는 무심하게 대하다가 가끔 무언가를 해줄 때 급격히 자기 자아를 부풀리면서 뿌듯해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지고의 기쁨은 남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때 찾아오는 것일까? 나만을 위한 삶은 재미가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동물을 키우기도 하는 것 같다.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서는 그러한 욕망을 좀더 간편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

부친은 올해 환갑을 맞는다. 자기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나도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새벽에는 우울해진다. 예전에는 늘상 이렇게 우울하곤 했다. 회사생활이 힘들어지면서 일찍 잠들지 않으면 보통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내야 했기에 다음날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는 법을 익혔다. 8월 한 달 동안 쉬면서는 밤에 잠들기 싫은 게 더 심해졌다. 예전에는 체념하고 잠들었는데 8월 동안에는 당장 내일 갈 곳도 없으니까 미룰 수 있을 만큼 잠을 미뤘다. 그 시간에 분갈이를 하고 죄책감없이 야식을 먹고 휴대폰 게임을 10종류 정도 다운받아서 해보고 손으로 일기를 써보고 차를 마셨다. 이러한 삶은 좋지 않다. 좋지 않고 의미도 없다. 그리고 우울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야만 우울해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 정말로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나라는 인간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효율적일지 계산을 해본다.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 지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숨을 돌리고 보던 것들과는 다른 것을 접해보기도 하고 눈을 감기도 해야 하는 시간이다.

몸이 잠을 거부함과 동시에 잠이 몸을 거부한다. 몸으로 들어오기 싫어하는 잠. 내 몸에 머물지 않을 때 잠은 가장 자유로운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식물이 심긴 화분을 보면 이 이파리가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가끔 의심하게 되기도 하지만 죽은 식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죽은 식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형태를 유지하며 위로 꼿꼿이 서 있지 않는다. 아주 말라비틀어져서 가루로 사라져버리거나 햇빛과 습도에 녹아서 데친 것처럼 흙 위에 쓰러져 눕는다. 사라지는 것의 자유로움을 내가 좀더 잘 알게 되면 기쁠 것이다.




침대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