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을 돌보다가 제일 아끼는 식물 중 하나인 아칼리파 모리아의 가장 커다란 위쪽 잎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른 잎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보기 좋은 잎이 늘어져 있어 마음이 아팠다. 어제까지만 해도 빳빳하게 서 있던 꽃들도 아래를 향해 축 처져 있었다. 요즘 나는 비오킬을 희석한 물에 저면관수를 해서 식물들에게 물을 주곤 하는데, 내가 어제 아니면 그저께 이 식물한테 물을 줬는지 안 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몇번이나 물을 주려다가 '에이 아직 아닌 것 같아' 하고 물을 안 준 식물도 있고 또 물을 안 주려다가 그냥 줘버린 식물도 있고 해서다. 잎이 처진 것이 너무 불안했다. 겉흙은 바짝 말라 있었다(하지만 그를 심어둔 흑막분은 정말 빠른 속도로 물이 마르는 화분이라서 물을 준 직후라고 겉흙은 말라 있다). 결국 물을 주었다. 5분 간격으로 그 잎에 다시 힘이 돌아왔는지 가서 만져보다가 너무 잎을 괴롭히면 안될 것 같아 일기를 쓰러 왔다. 어! 방금 또 확인을 하고 왔는데 축 처져 있던 꽃이 포물선을 그리며 조금 솟아 올랐고, 아주 약간이지만 잎이 두꺼워졌다. 물이 말랐던 게 맞나 보다.
돌고래와 같이 카페에 있었다. 서점에 가고 싶어서 그 카페에서 가장 가까운 서점 중 하나였던 헬로인디북스를 찾았다. 앨리슨 벡델의 <당신, 엄마 맞아?>와 독립출판자를 위한 디자인 가이드(제목이 생각 안 난다)를 들고 고민하다가 결국엔 강민선의 <외로운 재능>을 샀다. 강민선 작가의 책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가 독립출판작가라는 사실 때문에 이상하게 꺼리는 마음이 생겨 오랫동안 읽어보지 않았지만 땡스북스나 이후북스에서 볼 때마다 사실 정말 궁금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가 꽤 유명해진지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조금 마음이 열렸는지 아주 작고 귀여운 판형의 <외로운 재능>을 사보게 되었다. 판권을 보니 직접 쓰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제본 등 인쇄까지 의뢰한 모양인데 책의 질이 무척 좋아서 놀랐다. 디자인도 좋고 교정교열도 좋고 인쇄도 좋고. 먹배경에 백색 글씨로 인쇄한 페이지가 중간중간 있는데, 아르떼에서 만든 21세기 SF인가 하여튼 무슨 야심찬 기획으로 만든 무크지에도 이러한 디자인이 있었지만 그 경우 인쇄가 아주 끔찍하게 나와서 백색 글씨가 검은색 배경에 다 가려져 있었던 걸 생각하면 개인 수준에서 아주 훌륭하게 인쇄 품질을 관리한 것 같다. 이 책은 그의 일기를 모아둔 글로 보인다. 이걸 읽다 보니 일기가 쓰고 싶어졌다.
최근에 고기가 너무 싫어졌다. 그건 롯데박스에서 시킨 쿠킹박스에 들어 있던 돼지고기 재료를 조리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쿠킹박스는 롯데슈퍼에서 판매하는 밀키트다. 모든 재료들이 다 들어 있고 그것들을 냄비에 때려붓거나 하기만 하면 요리가 완성된다. 그런데 쿠킹박스 메뉴 중에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지 사람들이 많이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말이다(실제로 그렇기도 할 거다). 여튼 그날은 전에 돌고래와 같이 맛있게 먹었던 묵은지돼지고기찜?을 두 번째로 조리하고 있었다. 나는 쿠킹박스를 사면서 처음으로 핏물이 흐르는 고기를 부엌에서 다뤄보게 되었다. 핏물을 보고 그걸 씻어내거나 하는 일은 진짜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기로 전에 어떤 요리를 할 때는 분명 핏물을 뺀 후에 조리를 하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레시피북에 그런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핏물이 뚝뚝 흐르는 채로 고기를 넣어 요리를 해먹었다. 사실 그 핏물이 흐르는 걸 보는 순간부터 갑자기 너무 이 요리가 싫어졌는데, 그냥 참고 했다. 그랬더니 음식을 먹을 때도 고기 특유의 냄새가 너무 역하고 싫었다. 내가 핏물을 안 씻어서 고기에서 피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는 것 같았다. 근데 핏물을 안 씻은 건 그 핏물을 씻는 게 너무 괴롭고 힘들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게 왜 힘들까? 그걸 깊이 생각하다보면 진짜 괴로워지기 때문에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그 이후로 쿠킹박스를 안 시켰다. 반찬가게에 가서도 나물이나 김치 같은 반찬류만 샀다. 집에서 고기 음식을 입에 대는 게 조금 무서워졌다(며칠 전 망원역 부근에서 돈까스는 맛있게 먹었지만).
오늘도 반찬가게에 들렀다. 평소 같았으면 치즈가 들어간 음식이라도 샀을 텐데 그것도 내키지 않아서 깻잎지나 무생채 같은 반찬만 잔뜩 샀다.
오늘은
아너위에서 원두 5천원치를 샀다(100그램).
헬로인디북스에서 책 한 권과 엽서 두 장을 샀다.
반찬4종과 갓김치, 간편누룽지를 샀다.
낮에는 할 일이 없어서 지루했지만 책을 한 권 사와서 이것을 읽고 있으니 별로 심심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