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에 대해서


오늘은... 내가 퇴사를 전제로 하지 않고 이렇게 휴가를 마구잡이로 썼던 적은 없는 것 같으니까 오늘은 평소랑 많이 다른 날이다. 난 계속 내 자신에게 묻게 된다. 정말 거짓말 아니고 우울증이 그만큼 심한 거 맞아? 다른 때처럼 조금 지나면 또 버틸 만해지는 거 아니야? 하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스스로에게 그런 것들을 그만 묻고 싶다... 의사가 며칠 휴가를 붙여서 쓰고 푹 쉬라고 하길래 저는 집에 있을 때는 안 힘들고 회사에 있을 때만 힘이 든다고 했더니 우울증이 아직 심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심하지 않은데 왜 이렇게 힘든 것이냐 하니 가벼운 우울증이든 심각한 우울증이든 힘든 건 매한가지라고 했다. 잘 이해가 안된다.

이것저것 하다가 영대와 등산했다. 그게 첫 외출이었나? 아니다. 그전에 영대랑 식빵 사러 동네 빵집에 갔다. 아침 해먹었다. 다 먹고 나니 이미 12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두 시간 정도 누워 있었다. 포트폴리오 코드 짜는 돌님 옆에서 조금 있다가 누워 있다가. 샤워하고 파스타 먹었다. 그리고 등산했다. 새절역 부근에 있는 동네 산 입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주차해놓고 산을 올랐다. 개나리도 보고 목련도 보고 꿩도 보았다... 목련 밑에서 사진을 찍었다. 진달래들이 피어 있었고 새순들이 이제 막 펴지려고 하고 있었다. 기분은 좋았다. 다쳤던 오른쪽 발목은 조금 시큰거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스타니스와프 렘을 요즘 읽는데 그 책에서도 역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다만... 그냥 정확히 무슨 말인지 맥락을 모르면서 마구잡이로 읽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나와 작업하는 저자들을 다 한 대씩 때려주고 싶다. 몰래 뒤로 가서 말이다. 그 사람들은 절대 나를 볼 수 없어야 한다. 그냥 기분 나쁘게 통통 때려준 후 나는 그곳을 떠나서 내 인생에서 그 사람들이 이제 그만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편집자라는 직업은 대체 왜 생긴 걸까? 진짜 최악의 직업. 최악의 직업!!!

아까 트위터에 내가 내일의 나를 위해 간단히 정리해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여기 가져와본다.

    회사 가서 하지 말아야 할 일
  1. 내 담당 책 매출 확인하지 말기
  2. 우리 팀 매출 다른 팀이랑 비교하지 말기
  3. 인터넷 서점 들어가서 베스트셀러 순위 안 보기
  4. 다른 직원들 업무일지 안 보기

내일 회사에 갈 생각을 하면 두렵다. 그리고 우울하다. 거기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싫다. 그리고 거기서 하던 일을 계속 하기 싫다. 좀더 젊었을 때 알아차렸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그러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조금은 늦게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 같다. 설령 자기 직업이 안 맞더라도 그만둘 수 있는 계기가 없다면 그 일을 평생 계속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번 일은 나에게 계기가 되어줄까? 나는 내심 그걸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볼 수 있도록 하는 기회 말이다.




침대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