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고 싶다


요즘 매일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근데 왜 그렇게 안 됐는지는 모르겠음. 고양이 때문에 좀더 바빠져서일까? 일기 쓰기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향상심이라는 것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이렇게 늦은밤 일기를 쓸 수 있는 건 오늘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11시까지 푹 잤더니 늦은 밤에도 뭔가를 할 기운이 남아 있다. 낮에도 시간이 많지만 이런저런 생산적인 일들(집안일, 외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일기 쓰기라든지 독서 같은 활동은 늘 미루어두게 된다...

요즘 아침으로는 떡을 사먹는다. 탄수화물 폭탄이라고들 하지만, 너무 달고 비싼 빵보다 부담이 없고 든든하다. 커피를 내려서 떡을 먹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점보의 화장실을 치워주고 청소기를 돌리거나 바닥을 비질한다. 그리고 점보 사냥놀이를 15분간 해준 뒤 간식을 준다. 점보 아침은 짝꿍이 출근하기 전에 주고 가고, 난 1-2시에 점보 사냥놀이를 한번 더 해준 후 점보 점심을 준다. 그리고 나도 밥을 먹는다. 뒷정리를 하고 외주 일을 한다. 4-5시쯤 되면 지루하고 뻐근해진다. 누워서 쉬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드물게 산책을 하기도 한다. 6시쯤부터는 돌님의 귀가를 대비해 여남은 집안일을 하고 저녁 준비를 한다...

사실 어제는 이런 루틴을 너무 열심히 하느라 완전히 지쳤다. 청소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비우고 청소기를 햇빛에 내다 말렸다. 발매트를 세탁하고 바깥에 내다 말렸다. 점심이랑 저녁 모두 직접 해먹고 설거지를 했다. 짝꿍은 야근이어서 저녁에도 내가 사냥놀이를 두 번이나 더 해줘야 했다. 집에 쳐박혀 집안일과 육아와 교정 일만 했더니 밤에 너무 우울했다. 내일은 반드시 외출하겠다고 다짐했고, 해서 오늘 외출했다. 지난 주말에 하늘공원에 가려다 그 위로 올라가기 위해 타야 하는 맹꽁이열차에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옆에 있는 문화비축기지에서 돌님과 시간을 보냈는데, 카페도 있었고 작은 도서관도 있었고 공원으로서도 좋은 곳이었다. 작업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러 선택지가 있는 것이 좋아서 거기에 가보았다.

버스로 다섯 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창밖을 보고 있으니까 육아에서 해방된 사람처럼 아주 행복해졌다. 육아 난이도야 천차만별이겠지만 정말 힘든 인간 육아를 하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이런 해방감을 느껴도 되는가 이상하였지만 그 해방감은 정말로 존재하였다. 그리고 4-5시간 정도 고양이를 혼자 두는 것에 대해서 전혀 힘들어 할 필요가 없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6번 탱크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시켜놓고 일을 하였는데 사실 일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일을 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있는 것이 행복해 별로 힘들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공원에 나가 컵라면을 사먹고 커피도 마셨다. 그렇게 있는데 이전에 이력서를 보내둔 곳에서 외주를 의뢰하는 메일이 도착했다. 며칠전 트위터에 '이제 슬슬 다음 외주가 구해져야 하는데'라고 썼는데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의뢰가 들어와 신이 난 나는 프리랜서 생활을 좀더 해봐야 할까, 생각했다. 사실 추석 연휴 때까지만 해도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물론 지난 열 달은 휴식만 생각하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회사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일들을 충분히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 않았든 꾸준히 일이 들어오면서 프리랜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 당장의 소득은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 시간을 들여 여기저기랑 연을 트고 작업물을 쌓아나가야지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다. 난 1년 반 주기로 회사를 옮기곤 했고, 좀더 긴 호흡으로 회사를 다녔다면 내가 얻었을 것을 가끔 생각한다. 그렇다면 프리랜서 역시 1년만 하고 그만둘 게 아니라 좀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오늘 제의받은 외주는 정말 하기 싫다. 직접 인디자인상에서 텍스트를 만져달라고(ㅋ) 한다. 어도비 구독료는 준다고 한다.ㅋ 그래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잘한 일: 엄마가 수시로 연락이 와서 여기에 원서를 넣어달라, 저기에 원서를 넣어달라고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거절했다.



침대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