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느지막히 일어났지만 왠지 기분이 우울하지 않고 상쾌했다. 주말을 잘 보내서일까? 며칠간 빠지지 않고 약을 잘 먹어서일까? 오늘 같은 기분이라면 바깥에 나가지 않고서도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아 집에서 작업하기로 했다. 집에서는 듀얼 모니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c님이 운영하는 온라인 작업실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캠을 켜고 작업할 수 있었다. 그 작업실에서 난 다른 분들의 작업 공간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도 캠을 켜서 작업 공간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필름클럽을 계속 들었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노 베어스> 편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점이 사냥해주면서, 작업하면서 중간중간, 오늘의 작업을 마치고 바깥에 산책을 하고 장을 보러 나갔을 때까지. 이것저것 사서 돌아와 저녁밥을 준비하면서는 고민과 질문 편을 이어서 들었고 말이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음악만으로는 더 외로워지곤 한다. 그럴 때는 꼭 팟캐스트를 듣는데, 요즘 듣는 팟캐스트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필름클럽뿐이다. 이것이 내게 정말 많은 힘이 된다.
고민과 질문 편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20대 후반에 갭 이어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을 하실 건가요?' 호스트들은 대부분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시간을 보낼 때 조급해지지 말라고 이야기하였다. 한 호스트는 20대 때 실제로 이런 시간을 6개월 정도 가졌는데, 일을 할까 조금 더 휴식을 가질까 고민하다가 결국 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아주 후회한다고 했다. 뭔가를 많이 할 필요도 없고 그냥 한껏 늘어져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그치만 한껏 늘어져 있는 게 엄청 불행하면 어떡하지? 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던 게 잘한 선택일 수도 있지 않나? 난 지금 내가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힘들 뿐이었고, 오늘은 기분이 울적하지 않은 특별한 하루일 뿐이었다.
면접 준비를 했다. 2월 중순 합평 전까지 소설 작업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웠다. 지금 바로 소설 쓰기를 시작할 수는 없는 상태라 우선 이번주는 독서에 열중하기로 하고 스타니스와프 렘 단편선 중 <세탁기의 비극>을 읽었다. 나는 전자회로를 다루는 소설 혹은 '전자적' 소설을 좋아한다. 렘의 이 소설은 전자회로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소설인 동시에 전자적인 소설이었다. 왜인지 설명은 못하겠다. 전자적이라고 생각하는 또다른 소설은 빅토르 펠레빈의 <아이퍽10>이다. 어쩌면 나는 좋은 소설은 다 전자적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전자적 소설의 목록을 좀더 늘려가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나에게 힌트가 될 수 있을까? 난 소설을 쓸 영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것을 읽었다. 그렇지만 보통 내가 읽으며 영감을 얻었던 건 생물학 책이긴 했다. 그 때문에 바뚜라나와 마렐라의 <자기 생성과 인지>를 구입해뒀지만, 내 예상보다 너무 철학적인 문장이 가득한 느낌이어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뜨개질을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맴돌아서 목도리를 네 단, 다섯 단 정도 떴다. 아마 이 목도리는 내년 겨울에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후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