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 무료로 주어진 것 같은 공휴일이었다. 늦잠도 자고 샌드위치도 사먹고 포장해서 파는 육개장도 끓여 먹고 동물의 숲도 하고 모자도 사고 돌고래와 종로 탐험을 하고 마라탕을 먹었다. 먹고 싶던 뱡뱡면은 식당이 문을 닫아서 먹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시간의흐름에서 나온 담배와 영화를 많이 읽었다. 재미없다고 했던 거 취소... 재밌음.. 내일 다시 회사에 간다고 생각하니 몸이 뻑뻑하게 굳지만 이제 곧 마감을 앞두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동시에 힘이 나기도 한다. 이제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것...
투표소 줄이 길까 걱정하면서 빨래가 돌아가는 사이 투표를 하러 갔는데 줄이 하나도 없어서 빠르게 투표를 하고 나왔다. 용지를 접어서 넣었어야 했는데 펼쳐서 넣는 바람에 옆의 봉사자?분들이 접어서 넣으라고 했다. 그런데 이미 용지가 펼쳐진 채로 들어가버렸다. 옆에 앉아 있던 분은 내가 누구를 찍었는지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괜찮다고 말했다.
집에 있는 식물들: 유칼립투스, 벵갈고무나무, 호야, 콩고, 스킨답서스(물꽂이 중). 사무실에 있는 식물들: 은엽아카시아, 스킨답서스(물꽂이 중).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의 즐거움을 이해할 것 같다. 집에 돌아갈 때도 별로 혼자라는 기분이 안 든다. 이들이 식물인데도 말이다. 놀랍다..
노가든이라는 식물 가게에 가서 식물들을 구경했는데 의외로 큰 감흥이 없었다. 아주 큰 규모의 꽃시장에서 아무렇게나 내놓은 식물들을 볼 때 느껴지는 놀라움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데도 너무 예쁘고 또 어떤 것들은 별로 관심이 안 가는데 어떤 것들은 정말 특별하게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것들 말이다.
중력의 키스는 이제 마지막 리딩만 재빨리 하고 쪽수 표기 같은 것들을 조금 바로 잡은 후 색인만 만들면 본문 작업은 끝날 것 같다. 표지 문안도 써서 디자이너에게 올렸고, 문구를 앉힌 표지가 나오면 여러 요소나 카피를 약간씩 바로잡는 수정만 하면 될 것이다. 너무 힘을 쓰지 않기로 한다... 이 정도까지 온 것에 대해 만족하고 너무 힘을 빼지 말아야 한다. 지금 조금만 더 힘을 쓰면 혼절할 것 같다. 회사에서 상사들이 나를 무척 미워하며 괴롭게 하여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들이 너무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서 만들어놓은 일들이 없지는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이곳에 머물면서 그것들을 갈무리하고 또 아주 얇게 이어나가고 싶다. 그들은 나를 자르고 싶어 하는 걸까? 마음이 너무 괴롭다. 게다가 이번 책은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너무너무 어려웠고 두꺼웠다. 예전엔 어려운 책을 맡고 싶어 하는 혈기왕성한... 그런 상태였으나 이제는 다시는... 어려운 책을 하고 싶지 않고.... 아니 아주 가끔씩만 하면 좋을 것 같다. 흰머리가 많이 생겼다.
지난 12월 말에 초판 찍은 책이 재쇄를 찍는다고 해서 놀랐다. 세일즈포인트만 관찰했을 땐 판매가 너무 엉망인 책이었는데... 게다가 초판 찍은 만큼 중쇄 부수를 찍는다고 하여 더 놀랐다.(보통 초판의 반틈 정도 찍음) 그 책이 내가 알지 못하는 새 알아서 잘 팔리고 있던 것인가? 아무리 봐도 재밌어보이는 책은 아닌데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었구나... 계속해서 잘 살아가길 바란다...
내일은 지난 수요일 퇴사한 동료를 송별하는 모임을 몇몇 동료들과 조촐하게 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셋이서 같이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 집이 좀더 넓다면 우리 집에서 모이자고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하지만 금요일에는 무무와 돌고래가 우리 집에 와서 모임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