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의 하루

글 · sasad


"돌부야."

다정하게 부르는 소리에 돌부는 잠에서 깼습니다. 돌부는 방금전까지 꿈속에서 언니 개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의 짜증과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돌부는 웅크린 몸을 펴지 않고 눈만 앞발 사이로 빼꼼히 내밀었습니다.

돌부를 깨운 것은 돌부가 살고 있는 묘목 농장의 주인 돌님이었습니다.

돌부가 눈만 깜빡이자 돌님은 돌부의 이마와 콧잔등을 몇 번 쓰다듬어주었습니다. 돌님은 여느 때처럼 밝은 낯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이면 돌부는 돌님을 따라 묘목 농장을 거닐곤 합니다. 돌님이 묘목을 돌보고 있는 동안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달리는 아침 시간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면 돌님이 콩나물과 돼지고기를 삶아 아침밥을 줍니다. 그렇게 돌부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하지만 오늘 돌부는 집밖으로 나서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어쩌면 아침에 꾼 꿈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농장쪽으로 걸어가는 돌님의 뒷모습을 보자 돌부도 기운이 났습니다. 돌부는 왕왕 짖으며 돌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돌님이 뒤돌아보며 기뻐합니다.

밤의 농장은 누구도 찾지 않을 것처럼 고요하지만 낮의 농장은 분주합니다. 아침 9시가 되자 농장의 일꾼 죠니 범보이가 느릿느릿 출근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정오까지 돌님과 범보이는 분주합니다. 돌부는 농장의 한켠에서 자라고 있는 몬스테라 옆을 거닐다가 옆에서 날아다니며 귀찮게 하는 참새를 앞발로 잡으려고 부산스럽습니다. 작지만 노련한 참새는 아직 어린 돌부에게 쉽게 잡혀주지 않습니다. 키가 크고 잎이 두꺼운 몬드리아는 부리부리한 눈을 홉뜨고 돌부의 놀이를 지켜봅니다.

오후 3시가 되자 고양이 기사의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돌님은 고양이 기사가 오면 시원한 청차를 내주고 함께 차를 마십니다. 돌부도 간식을 먹기 위해 그들의 옆에 자리 잡았습니다. 평소에 고양이 기사는 돌부의 유난스러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 돌부가 풀이 죽어보이자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돌님이 참외를 가지러 자리를 비운 사이 고양이 기사가 돌부에게 물었습니다.

"돌부씨. 무슨 일이 있으신겐갸옹?"

"오늘 좋지 않은 꿈을 꿨웡. 언니 개들이 나를 괴롭혔웡. 언니들은 다리가 길어서 도망치는 나를 금세 따라잡고 말았월월." 돌부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고양이 기사는 돌부의 눈물을 보고 흠칫하고 놀라더니 민망하다는 듯 주머니를 한참 만지작거렸습니다. 돌부는 눈물을 보인 것이 부끄러워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잠시 햇빛을 피하러 자신의 흙집으로 걸어갔습니다.

고양이 기사가 돌아간 후에 돌부는 부끄러움에 젖어 몬드리아의 옆으로 갔습니다. 돌부는 몬드리아 옆에 누웠습니다. 몬드리아는 잎 아래로 시원한 바람을 통과시켜주며 돌부를 달래주었습니다. 돌부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몬드리아가 속삭였습니다.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모두가 슬펐다가 기뻤다가 하는걸. 돌님도 마찬가지야."

"돌님도 나처럼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슬퍼할까?" 돌부가 시무룩하게 물었습니다.

"그럼. 돌님은 가끔 내 옆에 와서 얼굴을 붉히고 울기도 한다고." 몬드리아가 바람처럼 속삭였습니다.

"하지만 돌님은 내 앞에서 운 적이 한번도 없는데."

"돌님이 부끄럼쟁이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와서 웅크려 있는 너도 부끄럼쟁이야." 몬드리아는 킬킬대며 웃었습니다.

돌부는 몬드리아 때문에 또다시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돌님도 허튼 꿈 때문에 하루종일 슬퍼하기도 하고 별것 아닌 감정의 흐름 때문에 부끄러워하기도 하는구나. 멀리서 돌님이 죠니 범보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꾸지람을 들은 죠니는 투덜대며 몬드리아와 돌부 옆을 지나갔습니다.

"네가 가서 죠니를 달래주렴."

돌부는 물범 죠니의 지느러미에 볼을 부볐습니다.

죠니의 표정은 늘 그렇듯 변화가 없었지만 부드럽게 흔들리는 지느러미를 보니 그의 기분도 금세 나아진 것 같습니다.

어느새 밤이 되었습니다. 돌님의 짝꿍 슬쩍새가 돌님과 저녁을 먹으러 왔습니다. 슬쩍새는 돌부의 친구인 삽살개 주이를 데려왔습니다. 돌님과 슬쩍새는 두부 요리를 해먹고 돌부와 주이는 족발을 야무지게 뜯어먹습니다.

오늘밤에도 나쁜 꿈을 꿀지도 모르지만 꿈은 꿈일 뿐이란다. 몬드리아의 바람 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짙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쏟아질듯이 돌님과 돌부의 흙집을 감싸 안아 고즈넉합니다.